난 지금 수원에 자리 잡은 한 화장터인 연화장에 와 있다. 볕이 따사롭다. 점심을 마치고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일광을 즐긴다. 세상 태어난 한 보람을 맛본다. 망자를 위해 방성대곡을 하던 사람들의 기세도 한 풀 꺾였다. 때가 되어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봄기운을 만끽하며 담소를 나눈다. 까치가 자유롭게 노닌다.
메멘토모리. 죽은 이는 말이 없다. 뜨거운 불이 온 몸을 감싸도 뜨겁다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는다. 배도 고프지 않고, 목도 마르지 않다. 죽음은 그런 것이다. 그런 죽음을 맞이한 망자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절차에 참석하기 위해 난 지금 화장터에 있다. 태어나서 처음 와 보는 곳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어떤 문명이 지혜로운 문명인가 아닌가를 가름하는 첫 번째 요소는 <죽은이들에 대한 숭배>이다. 인간들이 시신을 쓰레기와 함께 버렸던 시절은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인간들이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기 시작한 것은 문명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사자死者를 돌보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 위에 놓인 눈에 보이지 않는 피안의 세계를 상정하는 것이다. 또 사자를 돌본다는 것은 인생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 가는 과정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종교적인 행동은 거기에서 유래한다.
산에 가 보면 죽은 이를 매장한 무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무덤을 보면서 나는 임산부의 볼록한 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인들은 무덤을 평평하게 다지지만 한국인들은 봉분을 만든다. 그 봉분을 보며 나는 한국인은 죽음을 그저 죽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은 곧 재생과 관련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늘 곁에서 웃고 울던 사람이 이제 죽고 없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면 난 망자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가? 기쁨을 같이하기 보다는 슬픔을 함께 나누기 보다는 그저 무관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던 사람이 이제는 죽고 없다. 그런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슬플 게 무엇이냐. 살아 그만 죽어 그만인 사람 아니었던가. 지금도 타자에 대한 내 무관심은 현재진행형이다. 나쁜 놈. 그렇게 내 무관심은 살아있는 망자들을 대하듯 한다.
지금 망자의 아들은 몹시 서럽게 흐느낀다. 묻자. 무엇이 슬퍼-불경스럽지만 용서하길- 망자의 아들은 저렇게 슬피 운단 말인가? 통곡하는 아들 옆에서 내가 느낀 점은 이제 그에게는 아버지라고 불러도 대답해 줄 이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됐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되고 말았다. 단독자의 죽음은 그래서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자식은 ‘아버지’란 명명을 박탈당한 셈이다. 그게 슬펐겠지. 살았을 때 좀 더 잘 할 것을 그렇게 못해 저리 슬픈 것이겠지. 죽은 사람을 위한 진혼곡은 결국은 산 자를 위한 노래이지 않을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당신 때문에 나는 너무 슬프다. 결국 우리가 눈물 뚝뚝 흘리고 우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 우는 셈이다. 당신의 죽음 앞에 눈물이라도 쏟아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막상 망자가 살아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에게서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인식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존재만으로 소중했다는 사실은 그 존재가 부재함으로써 깨달을 수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일지는 몰라도 어리석은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가 타인에게 잘해 줄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짧은가? 기껏해야 백 년도 되지 않는다. 백년? 백 년은 커녕 십년, 아니 일년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해관계에 얽매여 하루에 12번도 더 싸운다. 그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했던가. 통곡할 일이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화장터 주위를 배회했다. 커다란 건물 기둥에는 여러 글들이 적혀 있었다. 딸 졸업식을 보기 위해 졸업장으로 달려가다 운명을 달리한 아버지를 애도한 딸의 글을 읽자니 목이 멘다. 여러 글 가운데 살았을 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가를 깨우쳐 주는 글이 있어 수첩에 바삐 적었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저녁 내 아들이 자기가 쓴 글을 내밀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화분에 물 준 값 500원, 내 방 청소한 값 1000원, 가게에 엄마 심부름 다녀온 값 500원, 엄마가 시장 간 사이에 동생 돌봐 준 값 500원, 나는 기대에 찬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연필을 가져와 아들이 쓴 종이 뒷면에 이렇게 적었다.
너를 뱃속에 열 달 동안 데리고 다닌 값 무료, 네가 아플 때 밤 새워 간호하고 널 위해 기도한 값 무료, 너 때문에 지금까지 눈물 흘린 값 무료, 장난감, 음식, 옷, 심지어 네 코풀어 준 것까지 전부 무료. 그리고 지금까지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무료.
아들은 내가 쓴 글을 다 읽고 나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말했다.
“엄마, 사랑해요?”
그러더니 아들은 연필을 들고 큰 글씨로 이렇게 썼다.
“전부 다 지불되었음.”
살아서 가끔 초상집에 초대될 때가 있다. 초대라는 말이 껄끄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망자가 초대한 자리에 가 봐야 한다. 가보면 살아온 대로 살았다가는 한 번도 못 볼 얼굴들을 그 자리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안부도 묻고 담소도 나눈다. 이청준 선생이 죽음을 바라보고 쓴 소설 <축제>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죽음을 두고 모인 초상자리를 왜 ‘축제’라고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생 얼굴 못 볼 분을 그 연화장에서 보고 왔다. 그 뿐 아니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어찌 해야 옳은 도리인지도 느꼈다. 부모란 존재가 없었다면 나란 존재가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것들은 책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펄펄 살아 있는 무자서無字書가 아닐 수 없다.
살아 있을 때 우리는 죽음을 자주 목도해야 한다. 초상집에 자주 찾아가야만 한다. 죽음이 있는 그곳에는 바로 삶의 지표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며 살자.
사랑이라는 말이 삶에서 봄 햇살처럼 지핀다면 얼마나 좋을까? 팍팍하고 퍽퍽한 한 세상 그래도 유쾌하게 건널 수 있지 않을까?



